| |
| |
곽인찬, paulpaoro@naver.com |
등록일: 2007-12-06 오후 11:52:04 |
외국 작품을 우리 배우들이 우리말로 공연하는 라이선스 작품은 어디까지 손을 대는 게 좋을까. 될수록 원작의 맛을 살려야 할까, 아니면 우리 상황에 맞게 적극 손을 대야 할까. ‘스펠링 비(Spelling Bee)’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같은 작품이라도 뉴욕 브로드웨이나 런던 웨스트엔드, 서울 대학로 관객들이 보고 느끼는 게 같을 순 없다. 현실적으로 라이선스 작품은 크든 작든 ‘한국화’ 과정을 거쳐 무대에 오른다. 현재 공연 중인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뷰티풀 게임’에서는 아일랜드 청년들이 술집에서 노래 부를 때 ‘처음처럼’과 같은 소주 브랜드가 튀어나온다. 라이선스 공연 때 들리는 유행어 몇 개는 객석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감초 역할을 한다. 문제는 어디까지 손을 댈 것인가이다. 너무 바꾸면 원작을 훼손하는 꼴이고, 그대로 놔두면 뭔가 어색할 수도 있다. ‘스펠링 비’는 어색한 쪽에 속한다. 낱말 철자를 맞히는 스펠링 비 대회는 장학퀴즈 또는 도전골든벨과 비슷하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스펠링 비는 예컨대 스펠링이라는 단어의 철자, s-p-e-l-l-i-n-g를 알아맞히는 게임이다. 장학퀴즈나 도전골든벨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러다보니 미국인들이 복잡한 철자를 맞힐 때 느끼는 짜릿한 긴장감을 맛볼 수 없다. 공연 중 출제된 단어는 애플(apple)처럼 너무 쉽거나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어려운 단어들뿐이다.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흥미가 떨어지니 중학생 또래의 대회 출전자들이 토로하는 저마다의 고민도 크게 마음에 와 닿질 않는다. 고민 역시 이질적이다. 한 여학생은 게이 부모를 두고 있으며 다른 여학생은 인도에서 명상 수행 중인 엄마를 그리워한다. 또 다른 남학생은 생뚱맞게도 방청석에 앉은 어떤 여학생에 홀려 ‘고추’가 서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다. 결론은 문제를 풀어가는 동안 서로 정이 쌓여 “꼭 이겨야만 하나. 져도 괜찮아”라며 서로를 감싸 안는 걸로 끝난다. 결론만 보면 감동의 물결이지만, 객석과의 공감대 형성 과정이 생략된 것 같아 아쉽다. 어른들이 아이들 옷을 입고 연기를 해서일까. 무대는 좀 어수선하다. 사전에 뽑은 관객 네 명을 초반 문제풀이에 여섯 명의 배우들과 동참시킨 것도 매끄러운 진행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적인 정서와 부합하지 않더라도 성공하는 라이선스 작품들이 많다. ‘헤드윅’은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트랜스젠더의 비애를 그린 작품이지만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굳혔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주인공 헤드윅의 삶이 인간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라이선스 공연의 범람 속에 ‘스펠링 비’는 작품을 선택하고 이를 한국화하는 방식에 새로운 시각을 요구한다. |
곽인찬의 전체기사보기 | |||||
< 저작권자 © 뮤지컬 라이프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